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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기획연재

[가톨릭 팩트 체크] 별의 위치가 다른 기적의 패는 가짜다?

몇 년 전부터 한국 교회에는 소위 ‘가짜 기적의 패’를 비롯하여 “불순한 의도로 왜곡 판매”되는 거짓 성물들에 대한 경고가 돌기 시작했습니다. 2022년 초, 한국천주교주교회의가 왜곡된 성물에 대한 주의를 요청하는 공문을 발표했고, 수원교구 역시 독자적인 자료를 제작하여 배포했습니다. 이에 한국 교회 안에서는, 말하자면 ‘성물 세심증’이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신자들은 온 · 오프라인을 막론하고서 너도 나도 자신이 구매하거나 선물받은 이 성물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고민하고 질문하며, 성물방에 문의하기까지 합니다. 가톨릭평화신문과 같은 교회 언론 역시 가짜 성물 논란을 적극 보도하며 “사목자와 신자 개개인의 점검”을 요구했습니다.

 

수원교구 측 자료에 따르면, 기적의 패의 경우 ① 윤곽이 흐릿하거나 기도문이 일부 변형된 것, ② 뒷면 별의 위치가 다른 것, ③ 별 모서리 갯수가 5개가 아니라 6개인 것, ③ 십자가와 M 자의 끝부분에 뿔 모양이 있거나 교차된 방향이나 각도가 이상한 것, ④ 컴퍼스가 있는 것, ⑤ 칼이 성모 성심을 관통하지 않은 등등의 디자인의 기적의 패는 “하느님 · 성모님을 모독하는 글자, 형상”으로서 가짜 기적의 패라고 합니다.

 

거짓 기적의 패에 대해 수원교구 측에서 배포한 자료. [각주:1]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는 가짜 뉴스입니다. 교회에서 인가 받지 않은 사이비 사적 계시, 프리메이슨 음모론자들의 억측, 사이비 도상학과 지적 게으름, 편집증스럽고 강박적인 망상에 근거한 헛소문입니다.

 

이에 어떤 교우님들은 ‘아니, 지금 주교회의의 판단을 그런 식으로 비난한단 말인가?’ 하며 감정에 북받쳐 반발심부터 들지 모르겠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하느님과 성모님을 모독하는 독성죄일지 모르는 일인데 무턱대고 단정짓고 방임하는 나이브한 태도로 보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팩트는 항상 감정보다 우선해야 합니다. 팩트 체크를 해봅시다.

 

 

기적의 패 디자인은 처음부터 ‘디테일’에 집착하지 않았다


기적의 패 디자인은 성녀 가타리나 라부레 수녀가 목격한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환시에 근거하며,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대림 제1주일 전날이었던 1830년 11월 27일 토요일, 저녁 5시 반에 깊은 침묵 가운데 묵상을 하고 있었습니다. 제단 우측에서 비단 드레스에서 나는 소리 같은 게 들린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성 요셉 성화 가까이에 복되신 동정녀가 보였습니다. 그녀의 키는 중간 정도였고 얼굴은 아름다움을 묘사하는 게 제게는 불가능할 정도로 너무 아름다웠습니다. 그녀는 우리가 흔히 ‘동정 성모’라고 부르는 형태와 같이 평평한 소매를 지닌 밝은 흰색의 드레스를 입고 서 계셨습니다. 머리는 양쪽에서 발까지 내려오는 하얀 천으로 덮여 있었습니다. 머리카락은 띠가 묶여 있었고, 그 위에는 작은 레이스로 장식된 일종의 머리띠가 머리카락에 평평하게 놓여 있었습니다. 얼굴은 거의 드러나 있었고, 발은 지구 모양, 절반의 지구 모양 위에 놓여 있었는데, 저한테는 지구 모양의 절반만 보였습니다. 허리띠 높이까지 올려져 있는 손에는 지구 모양(우주의  형상)을 아주 쉽게 들고 계셨습니다. 그녀는 하늘을 향해 눈을 들어 지구 모양을 우리 주님께 봉헌하시면서 얼굴이 환하게 빛났습니다.

…… 제가 그 모습을 관상하느라 바빴는데, 동정 성모께서 저를 내려다 보셨고 제 마음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음성이 있었습니다.

“네가 보고 있는 이 지구는 전 세계, 특별히 프랑스와 각 사람들을 상징한다.”

…… 동정 성모의 주위에 어느정도 타원형이 묘사되었고, 거기에 우리는 금색 글씨로 써진 이러한 말을 읽었습니다.

“죄 없이 잉태되신 마리아, 당신께 의지하는 우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O Marie, conçue sans péché, priez pour nous qui avons recours à vous].”

그러자 제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음성이 들렸습니다. “두드려라, 이 모습에 따라 패를 두드려 만들어라. 이 패를 착용하는 사람들, 특히 목에 거는 사람들은 크나큰 은총을 관대하게 받을 것이다.”[각주:2]

 

기적의 패 뒷면에 대해서, 가타리나 성녀의 고해 사제 알라델 신부는 성녀로부터 직접 다음과 같은 정보를 받았습니다.

묘사가 뒤집어졌고, 그녀는 반대편에 M 자에 십자가가 얹어진 것을 보았으며, 그 밑에 막대기가 있었고, 마리아의 모노그램 아래에는 예수님과 마리아의 성심이 있었는데, 하나는 관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다른 하나는 칼로 뚫려 있었다.[각주:3]

 

눈치가 빠른 사람이라면, 가타리나 성녀가 목격한 환시와 기적의 패의 디자인 사이에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분명히 가타리나 성녀가 목격한 환시에서는 성모님께서 지구 모양을 들고 계신데, 정작 기적의 패 앞면에는 양 팔을 벌려 빛을 비추는 성모님의 모습이 새겨져 있습니다.

 

이는 제작 당시에 지구 모양을 들고 계신 성모님의 모습이 신자들에게 혼란을 끼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던 탓에, 사람들에게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님의 모습으로서 더 친숙한 형상으로 디자인을 변경했기 때문입니다.[각주:4]

 

또한, “가타리나 수녀의 노트에는 마리아의 모노그램과 두 성심을 둘러싸고 있는 ‘열두 개의 별’에 대한 언급이 없지만, 패의 뒷면에는 항상 나타나 있다”라고 합니다.[각주:5] 기적의 패 뒷면의 별들 역시 가타리나 성녀의 환시에서 나타난 것이 아니며 나중에 임의로 추가된 것입니다.

 

즉, 기적의 패 디자인은 애시당초 가타리나 성녀의 증언에 바탕한 것인데, 그러한 증언에는 십자가와 모노그램의 세세한 디자인이 어때야 하는지, 교차되는 각도가 어떠해야 하는지, 예수 성심과 성모 성심의 디자인이 구체적으로 어때야 하는지 같은 ‘디테일’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습니다. 또한 기적의 패는 제작될 당시 가타리나 성녀가 증언한 모습에서 약간의 수정을 거쳤습니다. 별 역시 후에 덧붙여진 것입니다. 별이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 별 모서리가 몇 개여야 하는지, 그런 내용은 전혀 없습니다.

 

 

가짜 기적의 패 음모론의 기원

 

물론, 기적의 패 디자인이 애시당초 세부적인 묘사에 집착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어떤 알 수 없는 비밀스러운 악당들―사탄숭배자? 프리메이슨? 뭐가 되었든 나쁜 놈들―에 의하여 고의적인 독성을 첨가한 기적의 패가 유포되었다’라는 주장을 직접적으로 반박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모든 주장에는 ‘근거’가 있어야 합니다. 예컨대 누가 갑자기 ‘교황 레오 14세는 사실 미국인이 아니라 스웨덴 사람이다’라고 주장한다고 해서, 그 주장이 사실이 되는 게 아니듯이 말입니다.

그렇담 도대체 어떤 알 수 없는, 악의를 가진 비밀스러운 자들이 신성모독적인 가짜 기적의 패를 유포했다는 주장의 근거가 있기는 할까요? 어디서 출발한 주장일까요?

 

감사하게도, 기적의 패를 판매하는 해외의 가톨릭 단체 중 하나인 ‘세인트 폴 스트릿 에반젤리제이션’(Saint Paul Street Evangelization)에서 이와 관련된 무수한 사실들을 조사하고 종합하여 공개했습니다. 지금부터 이 내용을 살펴 보겠습니다.

 

2002년, 프랑스 뤼드박(Rue de Bac)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당시 뤼드박의 ‘기적의 패 성모 경당’과, 국제적인 전통주의 가톨릭 시민 협회인 ‘전통 가족 재산’(Traditon, Family, Property, 약칭 TFP) 사이에 마찰이 있었습니다. TFP는 기적의 패 성모 경당에서 제작하는 기적의 패와 디자인이 약간 다른 자체적인 기적의 패를 제작하여 홍보하고 기부금을 모금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기적의 패 성모 경당과 관련이 있는 캠페인인지에 대해서 성모 경당 측에 너무 많은 문의 편지가 들어왔습니다.

 

주임사제 다니엘 플랑쇼 신부(Fr. Daniel Planchot)는, TFP의 기적의 패 판매 및 모금과 성모 경당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입장을 다음과 같이 강하게 밝혔습니다. 

기적의 패 성모 경당의 책임자로서, 전통 가족 재산 협회가 기적의 패 및 그 메시지를 이용한 9일 기도 전단지를 배포한 이후 우리가 이에 대한 많은 민원을 접수했음을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동시에 이 전단지는 20~175 [유로]어치를 기부하도록 요청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 경당과 관련 있다고 생각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속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협회와 어떠한 상관도 없음을 강하게 확인하는 바입니다!

 

이러한 해프닝이 있은지 몇 년 후인 2009년 6월 1일, “성 미카엘 대천사와 수호 천사들”(Saint Michel Archange et Les Anges Protecteurs)이라는 웹사이트가 등장했습니다. 이 웹사이트의 내용은 “다니엘”(Danielle)과 “마리피에르”(Marie-Pierre)라는 닉네임을 사용하는 익명의 신자들에게 주어졌다고 하는 하늘의 메시지를 홍보하는 것이었습니다. 

 

같은 해 7월 27일과 8월 2일 사이에, “다니엘”은 천주 성부로부터 자신이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했습니다. 다니엘의 계시 주장에 따르면, 가톨릭 교회에 프리메이슨이 침투하여 거짓 기적의 패를 제작하여 퍼뜨렸다고 합니다. 다니엘의 주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진정 분파적인 문제가 교회에 침투하여 프티 카마르그 지역에 들끓고 있습니다.
바로 프리메이슨입니다.

교회는 프리메이슨 회원들 가운데 사제들을 모집해 왔습니다.

메주고리예의 마리아 발현이 시작된 이후로, 다이어네틱스가 말합니다. “사이언톨로지 교회.” 그것은 프리메이슨과 결탁했습니다.

여러분은 프리메이슨이 가짜 르뒤박 메달(기적의 패)을 퍼뜨리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늑대가 어린 양들 가운데 앉았습니다.

하느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는 말했다.
너희의 응답을 기다리겠다.”

 

다니엘의 주장에 따르면, “십자가 위에 오직 하나의 별”(Une seule étoile au dessus de la croix)이 있는 기적의 패는 프리메이슨이 만든 가짜인 반면, “십자가 위에 두 개의 별”(Deux étoiles au dessus de la croix)이 있는 기적의 패가 진짜라고 합니다.

 

그런데 다니엘이 제시한 가짜 기적의 패 디자인은 사실 2002년 당시 TFP에서 제작했던 바로 그 기적의 패의 디자인이었으며, 오늘날 수원교구가 가짜 기적의 패의 예시로 제공한 사진 속 기적의 패와 동일한 디자인입니다.

 

다니엘이 받았다는 계시 내용 및 가짜 기적의 패에 대한 경고문. 수원교구에서 배포한 자료와 마찬가지로 십자가 위에 위치한 별을 문제 삼고 있음. [각주:6]

 

2010년, 실비 데글(Sylvie Daigle)이라는 이름의 여성 블로거가 ‘성 미카엘 대천사와 수호 천사들’ 웹사이트의 내용에 몇 가지 주장을 덧붙여 유포했습니다. 이에 여러 프랑스 언론이 ―오늘날 한국 교회 안에서 벌어졌던 것처럼― 출처를 밝히지 않은 채 데글의 주장을 인용하거나 일러스트로 만들어 재생산했습니다.

 

이후 가짜 기적의 패에 대한 논란이 이탈리아어권 및 특히 영어권으로 인터넷 상에서 퍼져나갔고, 아무런 권위도 없는 개인들의 근거 없는 추측에 따라 가짜 기적의 패에는 사탄의 머리가 새겨져 있다느니, 십자가와 M이 교차되는 지점이 반대로 되어 있는 것은 사탄이 그리스도를 앞서는 것을 의미한다느니, 칼이 성모 성심을 제대로 꿰뚫지 않고 있다느니, 오만가지 강박적인 잡설들이 생겨났습니다. 

 

당연히, 이러한 주장에는 어떠한 근거도 없습니다.

 

2011년 6월 18일, 한 프랑스어권 웹사이트에 게시된 가짜 기적의 패 음모론 자료. [각주:7]

 

2015년이 되어 가짜 기적의 패 음모론은 광범위하게 제기되었는데, 가짜 기적의 패에는 마리아 십자가 하단에 프리메이슨의 상징인 ‘컴퍼스’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습니다. (수원교구 측 자료에서 말하는 “나침반”은 바로 컴퍼스를 잘못 번역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나침반 역시 영어로 compass이기 때문입니다. 애당초 나침반이 새겨져 있는 기적의 패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프리메이슨의 컴퍼스가 아니라, 성모님의 이름(MARIA)의 M과 A을 겹쳐 놓은 모노그램을 혼동한 것입니다. (애시당초 컴퍼스처럼 보이지도 않습니다….)

 

2015년 10월 28일, 영어권 웹사이트에서 “당신의 기적의 패를 확인하라!”라는 제목의 게시물에 첨부된 사진. 해당 게시물은 기적의 패 하단의 마리아 모노그램을 가리켜 “프리메이슨은 성모님의 왕관[열두 개의 별]에서 열두 번째 별을 프리메이슨 컴퍼스로 교체한 모독적인 버전의 기적의 패를 만들어 왔다”라고 주장함. [각주:8]

 

M과 A를 겹쳐서 묘사한 동정 마리아의 모노그램. 독일 부르크하우젠 수호천사 성당(Schutzengelkirche)에 전시되어 있다.[각주:9]

 

이러한 사실이 네티즌들에 의해 지적되어 이 주장은 금새 사그라드는가 했지만, 저명한 연설가인 아이작 메리 릴리아 신부(Fr. Isaac Mary Relyea)의 이름을 위시한 페이스북 페이지가 프리메이슨 컴퍼스 음모론을 다시금 유포하면서 재생산되었습니다.

 

2017년 필리핀 노발리케스 교구 구마사제 암브로시오 레가스피 신부(Fr. Ambrosio Legaspi)가 라디오 인터뷰에서 이른바 “악마 묵주”와 함께 “컴퍼스가 새겨진 프리메이슨 기적의 패”를 경고하면서 이 음모론을 더 많은 미디어가 보도하게 되었습니다.

 

2018년 10월에 이르러서도 미국 뉴저지주 강연에서 신비주의자 미셸 로드리게 신부(Fr. Michel Rodrigue)가 다시금 가짜 기적의 패에 대해 ―아무런 근거 없이― 경고하면서, 이 음모론은 겉잡을 수 없이 퍼지게 되어 오늘날에 이릅니다.

 

이 모든 사실에 근거하여, 세인트 폴 스트릿 에반젤리제이션은 가짜 기적의 패 음모론이 다음과 같은 이유로 신뢰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1. 해당 주장은 서로 경쟁하는 두 조직 사이에 벌어진 공공연한 분쟁에 역사적 기원을 두고 있다.
2. 해당 주장은 입증되지 않은 사적 계시 주장에 기원을 두고 있다.
3. 해당 주장은 대부분 무비판적으로 유포되고 있다.
4. 해당 주장의 진실성과 역사가 매우 신속하게 모호해졌다.
5. 현대 미디어가 적절한 조사도 없이 정보를 퍼뜨렸다.

 

종합하면, 가짜 기적의 패 음모론의 기원은 자신이 천주 성부로부터 직접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하는 익명의 프랑스 여인이었습니다. 이 계시는 가톨릭 교회 안에 프리메이슨 사제들이 존재한다는 음모론에 기반합니다. 십자가의 갈라진 끝이 사탄의 머리를 묘사한다느니 뭐니, 서로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들을 억지로 연관지으려 하는 사이비 도상학, 팩트 체크 없이 아무 말이나 덥석 덥석 믿고 공유하는 지적 게으름으로 이 음모론은 오늘날 정설처럼 퍼져 있습니다.

 

믿고 싶은 대로 믿고 생각하고 싶은 대로 생각하려 한다는 점에서 편집증스럽고, 가타리나 성녀의 환시에도 근거하지 않은 디테일한 묘사를 하나 하나 의심하고 따져 보려 한다는 점에서 지나치게 강박적입니다.

 

무엇보다도, 모든 주장이 전혀 사실이 아니라는 점에서 단순한 망상에 불과합니다.

 

기적의 패 앞면의 기도문이 반드시 프랑스어 원문을 그대로 반영해야 한다는 주장 또한 우스운 이야기입니다. 제작 여건에 따라서 일부 단어가 생략될 수 있고, 언어에 있어서도 라틴어나 영어 등, 그 외에의 언어로 번역된 기도문이 담긴 기적의 패도 흔합니다. 번역의 과정에서 동일한 언어라 할지라도 다른 단어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사탄의 묵주?

 

아쉽게도, 수원교구와 가톨릭평화신문이 주장하는 가짜 성물의 또 다른 예시인 “악마 묵주”에 대해서는 많은 자료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대신에 우리는 “악마 묵주”를 경고했던 사람이 ‘프리메이슨의 컴퍼스가 새겨진 가짜 기적의 패’를 경고했던 바로 그 암브로시오 레가스피 신부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 사실만으로도 “악마 묵주” 역시 허황된 이야기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악마 묵주에 대해 수원교구가 배포한 자료.[각주:10]

 

소위 “악마 묵주” 내지 “사탄의 묵주”라고 여겨지는 것들은 온라인 쇼핑몰에서 판매되는 플라스틱 묵주들인데, 확실히 조악한 디자인을 가지고 있습니다. 십자가의 머리 맡에는 “유다인의 임금 나자렛 예수”를 뜻하는 라틴어 이니셜 “INRI”도 없습니다.

 

하지만 ‘디자인이 허술한’ 묵주라고 해서, 이것이 ‘신성모독적이고 사탄숭배적인 의도를 지닌’ 묵주라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수원교구 측 자료는 사진 속 “사탄의 묵주”에 뱀 머리가 있다고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어디에 뱀 머리가 있다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십자 나무의 가장자리에 우상숭배를 상징하는 오각형과 태양 광선”이 있다고 하는데, ‘오각형’과 ‘태양 광선’이 우상숭배를 상징한다고 주장하는 근거는 무엇입니까? 기적의 패에 대해서는 육각별은 안 되고 오각별이여야 한다고 하는데, 오각별은 좋은 것이고 오각형은 나쁜 것입니까? 완전히 엉망입니다.

 

과거 교황 프란치스코를 좋아하지 않았던 일부 신자들은 그분의 가슴 십자가가 전통적인 십자고상의 형태와 다르다는 이유로 교황을 비난하는 온갖 추측들을 제기했습니다. 가톨릭 교회를 모함하는 사이비 종교인들은 가톨릭 교회의 성화상에서 그리스도나 성인들의 머리에 그려진 후광이 태양신 숭배를 뜻한다는 음모론을 펼치곤 합니다.

 

가짜 성물 음모론의 수준은 이것과 다를 게 없습니다.

 

교황 프란치스코의 가슴 십자가.

 

 

실제로는 매우 구분하기 쉬운 사이비 성물

 

물론, 가톨릭 교회에서 분열된 단체들, 교회에서 금지한 이단적 계시를 추종하는 사이비 컬트 단체들이 사이비 성물을 만들어 유포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런 단체들은 자신들의 사이비 신심을 결코 숨기지 않으며, 그들이 만들어낸 성물들도 기존의 성물을 교묘하게 변형한 것이 아니라 아예 디자인 자체가 판이하게 다른 것들입니다.

 

예컨대 교회에서 금지한 베이사이드 성모 발현을 추종하는 ‘미국 로사리오의 성모회’에서 유포하는 기적의 패의 경우, M 자가 있어야 할 자리에 완전히 다르게 생긴 자신들만의 상징이 새겨져 있습니다. 그 외의 다른 성물들도 기존의 성물과 다르다는 것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게끔 완전히 다른 형태를 띄고 있습니다.

 

가톨릭평화신문 측 기사에서는 “가짜 기적의 메달을 구별해내기가 쉽지는 않다. 워낙 변형된 모양이 다양한 데다, 막상 육안으로 분간하기 어려운 것도 많다”고 했지만,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변형된 모양이 그렇게 다양하지도 않고―대부분 하나의 컬트 단체 당 한두 개 정도의 거짓 성물만을 주의하면 되는 데다, 그들 각각은 일관된 디자인을 고수하기 때문―, 육안으로 분간하기 어려운 것도 전혀 없습니다.

 

베이사이드 로사리오의 성모회 측 사이비 기적의 패. 디자인 자체가 판이하게 다를 뿐더러, 뒷면의 경우에는 기존의 기적의 패와 공통점이 전혀 없음. 

 

가톨릭교회 발 사이비 컬트 단체들의 책자와 성물에 대한 의정부교구 측 자료. 이질적이라는 것을 단 번에 알아볼 수 있음. [각주:11]

 

 

교구와 교회 언론은 ‘성물 세심증’을 조장하지 말아야 한다

 

기적의 패의 사례에서도 알 수 있는 사실이지만, 사적 계시, 사적 신심에서 비롯된 교회 미술은 그렇게까지 일관된 디테일을 중시하지 않습니다. 

 

예수 성심의 경우를 생각해 봅시다. 성녀 마르가리타 마리아 알라코크 수녀가 직접 자신이 환시로 목격한 예수 성심을 묘사한 것과, 일반적인 예수 성심 성화의 묘사를 비교해봐도 알 수 있습니다. 생김새가 전혀 다르지 않습니까? 하지만 아무도 자기 집에 있는 예수 성심 성화상을 두고서 ‘가시관은 성심 주변을 둥글게 에워 싸야 하고… 세 개의 못이 묘사되어야 하고… 성심 가운데 ‘charitas’(사랑이라는 뜻의 라틴어)가 적혀 있어야 하고… 성심 주변에 예수, 마리아, 요셉, 안나, 요아킴의 이름이 적혀 있어야 하는데… 이거 가짜 성물 아니야?’라고 투덜대지 않습니다.

 

성녀 마르가리타 마리아 알라코크 수녀가 직접 묘사한 예수 성심 / 대중적으로 널리 퍼져 있는 예수 성심 상본.

 

성녀 파우스티나 코발스카 수녀의 환시에 근거한 자비의 예수 성화는 또 어떠합니까? 파우스티나 성녀 생전인 1934년에 그려진 자비의 예수 성화와 성녀 사후에 그려진 자비의 예수 성화 역시 디테일한 부분에서 차이를 보입니다. 전자의 경우, 성화 속 주님의 손과 발에는 오상이 없지만, 후자의 경우는 있습니다.

 

또 서로 주님의 시선이 전혀 다른데, 파우스티나 성녀는 자신의 일기에서 증언하길 주님께서 자신에게 “이 성상화에서의 나의 눈길은 십자가 위에서의 나의 눈길과 똑같다”[각주:12]라고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그러면 눈길이 전혀 다른 후자는 ‘가짜 성화’일까요? 눈길이 전혀 다른 각종 하느님 자비의 예수 상본이나 조각상들은 모조리 폐기 처분해야 할까요?

 

터무니 없는 소리입니다.

 

1934년에 그려진 에우게니우시 카지미로프스키(Eugeniusz Kazimirowski)의 하느님 자비의 예수 성화 / 1952년에 그려진 아돌프 히와(Adolf Hyła)의 하느님 자비의 예수 성화.

 

이렇듯 교구와 교회 언론, 사목자와 평신도들이 부추기는 ‘성물 세심증’은 사실 관계와 이성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 불합리한 넌센스와 무지(無知)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교회 미술 안에서 도상학의 디테일이 변화를 겪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며, 신앙의 진리에 반하지 않는다면 교회는 이러한 일을 두고 경고하거나 단죄하지 않습니다.

 

주교회의와 가톨릭평화신문은 이러한 사실 관계를 다시 한 번 재검토하고, 공문과 정정 보도를 게시해야 합니다. 실제로 저희 ‘불네라 무브먼트’의 청년 신자 중 한 명은 약 1년 반 전에 이러한 사실을 자신의 개인 블로그와 SNS에 공유하고 가톨릭평화신문 기자에게도 제보했지만, 그 어떤 사제와 신자도 이러한 음모론을 바로 잡는 데 관심을 갖지 않았으며, 가톨릭평화신문에는 정정 보도는 커녕 이전의 기사들 역시 그대로 노출되어 있는 상황입니다.

 

만약 교회 안에 나주 성모동산 윤 율리아의 메시지가 퍼지고 있다면, 이렇게까지 무관심 할까요? 만약 교회 안에 베이사이드 베로니카 루에켄의 메시지가 퍼지고 있다면, 이렇게까지 조용할까요? 그런데 왜 프랑스 다니엘의 메시지에는 다들 이렇게 관대한 것일까요?

 

절대로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문제가 아닙니다. ‘자신이 천주 성부로부터 메시지를 받았으며, 가톨릭 교회 안에 프리메이슨 사제들이 침투했다고 주장하는 익명의 여인’으로부터 시작된 이 말도 안 되는 음모론으로 인해, “대형 성물 판매소와 본당 성물방들 상당수가 매장에 진열된 묵주와 기적의 메달을 전수 조사하고, 교회 가르침에 맞지 않는 성물들을 일일이 검토해 회수[하는]” 사태가 벌어 졌습니다. 각종 교회 안의 성물 판매 업체들이 음모론 때문에 신자들의 문의에 시달리고, 멀쩡한 성물들을 폐기 처분하는 데 시간과 노력을 허비한 것입니다. 신자들이 플라스틱 묵주를 판매하는 온라인 쇼핑몰 고객 센터에 “사탄 묵주임을 명확히 적어달라”며 문의 댓글까지 달았다고 합니다.

 

적어도 이런 거창한 움직임은 사그라 들었지만, 아직까지도 본당이나 온라인 상에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성물을 두고 가짜 성물이 아닌지 의심하는 신자들이 있으며, 애꿎은 성물방을 ‘가짜 성물을 판매한다’라며 모함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한국 교회는 하루라도 빨리 이 소란을 바로 잡아야 합니다.

 

부디 이 글을 주변의 신부님과 교우님들에게 공유해 주세요! 


요약

 

① ‘가짜 기적의 패’에 대한 주장은 자신이 하느님께 직접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하는 익명의 프랑스 여인에게서 시작되었으며, 가톨릭 교회에 프리메이슨 사제들이 침투했다는 음모론과 함께 공개되었습니다.

 

② 가짜 성물에 관해 교구와 교회 언론을 통해서 유포된 자료들은 어떠한 근거도 없으며, 해외 인터넷 상에서 유포되던 온갖 허무맹랑한 가짜 뉴스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③ 이로 인해 애꿎은 성물방들이 피해를 보고 있으므로, 교구와 교회 언론은 이에 대하여 공문과 정정 보도를 통해 하루라도 빨리 사실 관계를 바로 잡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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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1. 사진 출처 : 수원교구. [본문으로]
  2. M. Aladel, La Médaille Miraculeuse: origine–histoire–diffusion–résultats (Paris: Pillet et Dumoulin, 1878), pp. 74-76. [본문으로]
  3. Ibid., p. 73. [본문으로]
  4. Ibid., p. 85-86 참조. [본문으로]
  5. Ibid., p.76. [본문으로]
  6. 사진 출처 : Saint Michel Archange et Les Anges Protecteurs. [본문으로]
  7. 사진 출처 : gloria.tv. [본문으로]
  8. 사진 출처 : Traditional Altar Boy. [본문으로]
  9. 이 사진은 Renardo la vulpo의 저작물 Burghausen (DE), Marienmonogramm an der Schutzengelkirche이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본문으로]
  10. 사진 출처 : 수원교구. [본문으로]
  11. 출처 : 의정부교구 선교사목국. [본문으로]
  12. 천주교 사도직회(팔로티회), 『성녀 M. 파우스티나 수녀 - 내 영혼 안에 계신 하느님의 자비 일기』(예산: 도서출판 예사랑, 2018), p. 223, 326항. [본문으로]